네, 좋은 질문 주셨어요.
유물론 materialism 자체는 시험만 보면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닐 수 있습니다만, 사실상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대부분 유물론에 바탕하고 있다 보니까 알아두면 여러가지로 편한 부분이 있어서 제가 수업시간에 설명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materialism 은 맥락에 따라 배금주의, 물질숭배 이렇게 쓰일 때가 더 많은데 유물론으로 해석이 될 때는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물질적인 환경에서 찾는거에요.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왜 소를 신성시하게 되었나? 이런 물음에 대해서 힌두교 신화에서 소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했기 때문에. 라고 답하면 그건 유물론이 아니라 유신론에 해당합니다. 반면 유물론적으로 바라보면 인도가 농경문화라서, 소가 농업에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를 함부로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신화를 꾸며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요.
그러면 왜 인도에서는 신화를 통해서 금기를 만들어 소를 못먹게 했을까요? 고대로 갈수록 인류가 아는게 적고 배운건 더 적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소를 못먹게 만들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겁을 준거죠. 애비~ 소는 신성하니까 먹으면 안돼 큰일나.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자세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인류가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유럽의 경우에 그 시작은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르네상스를 통해 인문주의를 재발견한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과 의지와 이성의 가치를 긍정하게 된다는거죠. 세상이 신의 섭리대로 움직인다고 절대적으로 믿었던 시대가 저물었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왔나?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왔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교회가 죽으라면 그냥 다 죽는건줄 알았었는데, 이제 교회도 인간이 만든 조직일 뿐이니 부패할 수 있고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또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지식이 늘어나면서 과학적 사고의 유용함을 깨닫게 됐지요.
자연을 과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인간 사회라고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지 못할게 뭔가요? 이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성에 의지해 파악하고 무지와 광신을 몰아내고 그 힘으로 인류는 발전한다고 믿게 됩니다. 계몽주의지요.
이쯤 오게 되면 많이 배운 사람들은 materialist 가 될 수밖에 없는데, 자연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버렸거든요. 알고 보니 그건 신의 의지도 아니었고, 신이 왕에게 부여한 하늘같은 권력이라는 것도 다 뻥이었고, 정치체제라는건 다 주어진 물질적 환경에 인간이 적응해온 결과라는걸 깨달은거에요. 그 뒤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이 바로 서양 근대 문명의 역사입니다. AP 유럽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내용이지요. 재미있으면 내년에 도전해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