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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Ki Young Song] ap european history
ap european history 8
작성자 gus*** 등록일 2019-01-22 오후 9:48:42
16세기 - 장미전쟁 종료, 튜더왕조 시작, 헨리8세의 종교개혁, 엘리자베스1세의 통치, 
르네상스(토머스 모어, 셰익스피어), 제임스1세와 아메리카 식민지(제임스타운), Enclosure Mov.(Act)
17세기 - 찰스1세와 Civil War, 크롬웰과 Commonwealth 시대의 통치(puritanism과 mercantilicm), 
 왕정복고, 제임스2세, Glorious Revoluton과 Bill of Rights -의회정치 도입

Thesis: 
16세기 tudor dynasty는 점점 왕권이 strong해지는 경향을 보임(henry8세의 왕을 기반으로 한 정치, mary의 execution, elizabeth의 통치 왕권이 강화되는 경향을 띠었음
17세기는 점점 왕권이 약화됨 (동시에 의회에게 power 이 consolidate됨.)
이때의 method: 

France- 
주요 사건: henry IV의 edict of nantes, reformation of tax system- an increase in prestige of monarch
루이13세: Cardinal Richelieu- intendant system의 도입으로 noble power down.
루이 14세: 왕권이 약화되는 사건 존재: fronde
fronde이후에 the most powerful monarch세움 (nobility의 power down, revocation of the edict of nantes-20만 huguenot fled)

Thesis: 종교자유의 탄압, 귀족계층의 권력 약화를 통해 프랑스는 17세기 전반적으로 왕권이 강화되는 경향을 띠었음

이렇게 나열해보니까 england는 점점 왕권이 추락하는 추세, france는 점점 강해지는 추세를 확실히 보이네요
하지만 각 나라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때 이를 위협하는 사건이 하나씩 있었던거 같아요. 
영국은 james 2세의 restoration이고 프랑스는 fronde라고 느껴지네요. (이 점을 similar obstacle이라고 잡을 수 있을까요?)
*이제 이 두개의 결론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향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또한 여기서 점점 질문이 생기는데요!
영국이 constitutional monarch를 형성하는 과정이 의회에 권력을 '집중'(centralizaiton of authority)하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의회의 목적은 '평등'에 focus가 맞춰져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authority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에 있던 calvinist(puritan과 huguenot)이 미국으로 이주했을때, 물론 calvinist가 대다수는 아니였지만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을텐데, 이때 일어난 reduction in tax revenue가 governmental revenue를 줄어들게 해서 국가 재정에 타격을 입혔나요? (이게 맞다면 이점도 어느정도 obstacle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9-01-23 오전 3:45:27

아직 좀 산만한 부분은 있지만, 어떻게 사례들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지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thesis는 나왔다 치고 body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가 조금 정리해 드리면 아래와 같은데요.

 

=============

영국은 백년전쟁에 이어진 장미전쟁으로 귀족세력이 몰락한 가운데 튜더왕조가 들어섰고,

헨리8세의 국가중심적 종교개혁으로 영국 국교회가 생겨난 이후 엘리자베스1세 시대의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왕권이 강화되는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제임스1세와 그의 뒤를 이은 찰스1세의 절대주의는 의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신교성향의 의회는 친카톨릭적인 왕실과 대립해 English Civil War가 일어났다. 올리버 크롬웰의 Commonwealth 가 무너진 뒤

왕정이 복고되었지만 의회가 제임스2세를 몰아내는 데 성공해 Bill of Rights 가 통과되면서 Constitutional Monarchy가 확립되었다.

 

한편 100년 전쟁으로 영국과 분리된 프랑스는 16세기 중반까지도 발루아 왕조가 통치했으나

신구교의 대립으로 왕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바르톨로뮤데이의 학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신교파인 앙리4세가 즉위하고 종교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Politique들이 세력을 얻으면서

낭트칙령이 반포되는 등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쉴리-리셜리외-콜베르로 이어진 유능한 재상들의 통치는 프랑스의 경제를 성장시켰고,

독일 내 구교세력과 협력해 3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국가적 위상도 격상되었다. 루이 14세 재위 초반 프롱드의 난은

 이처럼 왕권이 절대화하는 상황에 대한 귀족 세력 최후의 저항이라 볼 수 있으며, 

이의 진압 후 프랑스는 전무후무한 절대왕정의 시대를 맞이한다. 

============

 

이렇게 놓고 보면,

 

Compare the development of the nation-state in france and in england from the early 16th to the end of 17th century.

 

- Were there common goal:consolidation, centralization of authority, and modernization?

국가통합(중앙집권화), 왕권강화, 그 과정에 필수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경제성장 등이 목표였다는 점은 동일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Did the monarchs of these two diverse nations have similar traits of personality, similar methods for consolidating power?

왕들이야 기본적으로 다 왕권강화를 추구하게 되어있는 것이고, 얼마나 유능한가 무능한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지겠죠.

다만 그 방법에는 비슷한 점들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종교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중요해요.

 헨리8세는 영국왕이 짱먹는^^ 국교회를 만들어서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카톨릭 교회의 재산을 몽땅 몰수해버렸죠.

하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는지를 두고 100년 가까이 갈등이 빚어져 구교친화적인 왕실과 신교친화적인 의회가 갈등을 빚습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크게 봤을 때 일국일종교로 카톨릭을 고수하면서 국가'통합'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Gallicanism 을 내세워 종교보다 국가, 정치를 우위에 두는 전략을 취하는데 이것이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Gallicanism is the belief that popular civil authority—often represented by the monarchs' authority or the state's authority—over the Catholic Church is comparable to that of the Pope's.)

 

- Were there similar obstacles to overcome, such as the vested interest of nobility or the need for governmental revenues?

james 2세의 restoration과 fronde 는 대조적인 obstacles 가 아닐까요? 한쪽은 절대주의자가 정권을 잡은 사건이고,

다른 한 쪽은 절대주의에 저항한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그밖에도 similar obstacles 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질문1. 의회의 역할/목적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16~17세기 영국이 중앙집권화의 과정에 있었다고 본다면 - 스코틀랜드 합병이 1707년,

 아일랜드 합병이 1801년 - centralization of authority 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국민이 모두 평등하고 의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매우 근대적인 것입니다.

 

질문2. 북미로 이주한 청교도인들은 주로 영국내 거주, 혹은 박해를 피해네덜란드에 이주해 살고 있던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식민지 건설은 굉장히 risky한 일이었기 때문에, 국내에 두어봤자 말썽거리라고 할 수 있는

청교도세력들에게 특허 Charter 를 주어 내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정부 차원에서 보면 인구가 줄어서 세금 수입이 줄어들었다기보다는,

별로 세금도 많이 못내는 사람들을 벤처사업에 뛰어들게 해서 결과적으로 식민지 건설에 성공하면

 다행이고 실패해도 크게 잃을 것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보는게 맞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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