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유태 민족은 자기들의 신만이 유일하고 전능하며 자신들을 특별히 선택해서 축복하고 구원해줄거라는 믿음(유태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자부심과는 반대로 주변 민족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러한 믿음은 점점 더 강해만 졌지요. 수난에 수난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에도 이런 강한 민족주의로 인해 저항적 행동 뿐 아니라 저항의 사상 역시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그 때 나타난 인물들 중에 이전의 선지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르침을 전하는 존재가 있었어요. 원수를 사랑하라. 왼 뺨을 치면 오른 뺨도 내어주라... 네, 그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로마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이가 죽고 나서 부활했으며 사실은 신의 아들이었는데 대신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사하러 내려왔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이제 유태 민족이 아니라 누구나도 전능한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들이 Christ(=Jesus)를 섬기는 Christian, 즉 기독교인인 것이죠.
예수가 활동했다고 알려진 시기가 아우구스투스 시대였고, 제정로마 300년간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대 교인들이 선교의 사명을 무지하게 강조했음) 알다시피 300년 경이면 로마도 망조가 들었잖아요? 보다 못해 기독교를 내세워서라도 사회 통합을 해보려 했던 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였구요. 그가 Edict of Milan 으로 기독교를 인정해주고 Council of Nicaea 를 열어 교리를 통일시키는데 (제국의 공식종교가 되려면 사상적/조직적 체계가 있어야 하니까) 거기서 중요하게 등장한게 Trinity 입니다. 삼위일체, 즉 성부=성자(예수)=성신(성령)이라는 논리인데 이후로는 이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부정해버리죠.
이 때 쫓겨나간 소수파들, 또 로마 영토가 아닌데 이미 기독교가 전해진 지역 등등이 있어서 이미 이 때부터 기독교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만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Trinity를 내세운 기독교가 양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해버리기 때문에 이들은 사실 역사상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 가끔 이집트나 수단 지역에 남아 있는 Coptic Chrisitanity 는 시험에도 나옵니다. (이들은 로마식의 기독교가 아닌 원시 기독교, 즉 예수 사후~300 c.e. 동안 전래되어 그대로 남아 있는 기독교.)
제국이 하나인 동안은 교회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고, 이들을 그냥 통째로 Christianity 라고 생각하시는게 좋습니다. Catholic(=universal)이라는 표현을 그때도 종종 쓰기는 했지만 나중에 동서교회 분리 후 서쪽 교회를 'Roman Catholic'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게 되니까 헷갈리지 않으려면 분리 이전은 그냥 Christianiry라고 기억하세요.
물론 분리 이전에도 동서교회는 체제가 좀 달랐습니다. 황제로부터 버림받은 서쪽은 교황을 중심으로 게르만 야만족 사이에서 살아남고자 노력을 거듭했고, 결국 '로마의 유산'을 자처하며 게르만 왕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중세 서유럽의 정신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됩니다. 반면 동쪽 교회는 교회 지도자가 있긴 하지만 황제의 권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서쪽처럼 그 위세가 크지는 않았죠. 그러다 동서 교회가 iconoclam 을 이유로 불화를 거듭하다 분리되기에 이르릅니다. 그 후로 기독교는 서유럽의 Roman Catholic 과 동유럽의 Greek Orthodoxy 로 크게 나뉘었구요. (잊지 말자 소수파 콥트교)
서유럽의 카톨릭 교회는 종교를 내세운 일종의 권력집단이었기 때문에 고위 성직자들은 정치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 있는 교황을 교황(=교회의 황제)이라 불렀겠어요. 하지만 이들은 세속 지배층들과 달리 공식적으로 결혼하거나 자식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직책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교황이 죽으면 새 교황을 뽑아야 하는데, 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자기와 친한 사람을 앉히려고 세속 군주들이 온갖 로비를 펼치는 상황이 벌어지는거죠.
그 결과 프랑스쪽에서 민 교황을 이탈리아 쪽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새 교황이 부임지인 로마로 못가고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머물게 되는데 이게 Avignonese Captivity 입니다. 거기 억류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로마에 못들어가고 아비뇽에 머물러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따로 교황을 뽑아서 교황이 둘이 되었고, 이런 상황이 길어져서 교회의 권위가 말도 못하게 추락하니까, 급기야는 관련자들이 둘 다 인정하지 말자며 새로 교황을 뽑아 교황이 세 명이 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펼쳐졌던 것이 중세 후반의 상황이랍니다.
그리고 미리 설명드리면 카톨릭 교회의 이런 부패와 타락 때문에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일어나서 Roman Catholic 의 대안으로 Protestant(개신교)가 생겨납니다. 그 뒤로 기독교의 다수파는 로만카톨릭, 개신교, 그리스정교 이렇게 셋으로 나뉘게 된거고요. 거기에 원시 기독교 소수파들이 존재하느..